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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책임 등록일 : 2015-04-15 12:00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왜 부끄러운 역사는 극복되지 않고 반복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충무공 이순신처럼 위기 앞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그리울 뿐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국가는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구하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1년이 지나도 알 수 없다. 35년 전 ‘광주’의 충격 못잖은 충격 앞에 온 국민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한겨레> 연재글을 묶은 ‘한홍구 역사논설’(부제)은 세월호 사태가 바로잡지 못한 역사에서 비롯했다고 논증한다.
저 혼자 속옷 바람으로 탈출한 이준석 선장과 겹쳐지는 역사적 장면은 익히 회자됐듯 한강 다리를 끊고 가장 먼저 도망친 이승만 대통령이다. ‘국민들은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라’는 거짓 방송까지 해놓고 돌아와선 되레 피난 못간 이들을 부역자로 몰아친 데서 역사는 또 뒤틀린다. ‘부역자 처벌’이란 이름으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이 현대사 비극의 정점. 이 순간이 “세월호의 죽음의 항로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본다. 김창룡·노덕술 등의 친일파가 주도한 부역자 처벌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권력자가 된 공안 세력, 그 수장이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김기춘이다.
‘김기춘뎐’은 유신 설계자인 그가 임명된 뒤 벌어진 내란음모와 통합진보당 해산 등 민주화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을 통찰한다. 그럼에도 대한민국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우리 시민 대중들이 간직한 숨은 복원력 때문”이다.
병자호란과 세월호
특히 철군하던 청군들은 30만~50만으로 추정되는 조선 여인들을 자기 나라로 끌고갔는데, 첩이나 노예로 부리고 살다가 돈을 주면 조선으로 돌려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압록강을 넘은 조선의 딸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고향집에서도 대부분 문전박대(門前薄待) 당했다. 청에서 임신했거나 접대부 노릇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의미의 환향녀(還鄕女)는 시나브로 '화냥년'이라는 욕이 돼버렸고, 그녀들이 낳은 아들 딸들은 오랑캐의 자손이라는 뜻의 '호로자식(胡虜子息)'으로 불리며 따돌림 당했다.
못난 임금 탓에 개털리고 그 나라한테 버림받은 그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비렁뱅이나 산 도적이 되어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 밖에 없었다.
성완종 게이트, 이완구·홍준표 등 권력 부패스캔들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의문 하나. 권력자의 부패와 무능 중 어느 게 더 큰 죄일까? 380년전 병자호란(丙子胡亂)의 교훈은 분명하다. 부패한 광해군보다 무능한 인조가 훨씬 공동체 파괴력이 컸다는 점.
광해군은 '기우는 명(明), 떠오르는 청(淸)'이라는 국제정세를 읽고 균형외교로 임진왜란 이후 민생을 그나마 안정시켰다. 인조는 대의명분(大義名分)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매달려 친명반청(親明反淸) 객기를 부리다 결국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이후 조선 백성을 기다린 건 도탄(塗炭)과 쇠락(衰落)뿐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380년전 조선으로 되돌아간 듯한 분위기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믿고 기울져 가는 세월호 안에서 국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바둥거리던 그 아이들은 죄다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말았다. 도대체 나라가 해준 게 뭐고, 해줄 수 있는 게 뭐냐? 무슨 고귀한 일이 그리 많아 선체 인양 결심 하나 하는 데 365일이나 걸리나?
이러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비상사태라도 닥치면 그 때처럼 뭉칠 동력이나 남아있을 지 의문이다. 북의 핵 위협,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 사드(THAAD) 배치문제로 점차 긴장감이 고조되는 동북아 정세까지, "인생은 각자 사는 거야, 남이야 죽든말든 너나 알아서 살아남아! 세월호 선장처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다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