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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조 이산 등록일 : 2007-10-23 19:38

정조대왕의 파란만장 인생 드라마!
정조正祖는 조선의 문물제도를 완숙한 경지로 끌어올린 제왕이다. 정치적으로는 탕평책을 쓰고 문화적으로는 규장각을 설치해 지식인을 양산했다. 이용후생을 실천하고 실사구시를 연구하던 실학자들을 깊이 이해했으며 서학(천주학)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던 기조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수입되기를 바랐다. 한편 왜란과 호란, 붕당 싸움으로 문란해진 정치의 기본구조를 확립하고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마련하고자 절치부심했던 군주였다.

이러한 그가 태어난 것은 영조 28년(1752) 3월이었고 열 살의 나이로 김시묵의 딸과 가례를 올린 것은 1762년 2월이었다. 그로부터 넉 달 뒤,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가 폐서인이 되었다가 뒤주 속에서 목숨을 잃은 참변이 일어났다. 이때의 정경을 적나라하게 그린 것이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이다. 뒤주 속에 가둬놓은 동궁이 굶어죽게 되자 영조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내렸다. 영명을 떨치던 군주인 영조가 저지른 씻지 못할 과오였다. 영조가 친아들을 죽인 이 사건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당파싸움의 희생물이라고, 사가들은 칭한다. 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 조정은 영조와 세자파로 나뉘어 갈등을 겪었다.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부왕과 세자 사이를 이간 붙이려는 ‘당쟁’은 결국 영조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세자는 뒤주에 갇히고 말았다. 그로부터 여드레 후, 찌는 듯한 무더위와 울분, 갈증과 허기 속에서 세자는 숨을 거두었다. 이것은 탕평책을 내세운 영조의 정책을 무색케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일은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세자가 죽은 뒤에도 음모와 모함은 세손과 영조 사이에서 또다시 꿈틀대고 있었다...

한문학자이며 역사연구소를 꾸려가고 있는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조의 세자 시절부터 병으로 죽을 때까지를 방송작가 출신답게 정사보다는 야사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특히 제2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홍국영은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저자는 한학, 수리학, 고전, 음양도 등 다양한 지식으로 조선조의 사회와 생활의 디테일을 버무려내 팩션으로서의 소설의 맛을 감칠 나게 잘 살렸다. 하지만 시청률에 목맨 요즘의 드라마들처럼 지나친 비약과 상상으로 역사적 사실에서 멀어지는 것은 경계했다.
댓글(1)
  • 2007-11-01 21:42

    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보는이들이 재밌다는..
    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보는이들이 재밌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라마가 아니라 책으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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