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사적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19호로 변경되었다.
금수산의 을밀봉에 있는
평양성 내성의
북장대로, 6세기 중엽에 처음 건립되었다. 평양성 중 가장 북쪽에 있기 때문에 사방이 트여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허정(
四虛亭)'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 자리에는
최승대(
最勝臺)가 있었는데 1714년(조선 숙종 40)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최승대는
모란봉으로 옮겨 가고 누정을 다시 지었다.
을밀대는 고구려 때 쌓은 높이 11m의 축대 위에 세운 단층 누정이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은
경사지를 절벽으로 이용하여 쌓은 단애성벽이다. 이는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연 지형을 잘 이용한 성벽 축조기술로, 평지성과 산성 등지에 자주 사용되었다. 축대 위에는 3면에 여장(성벽 위의 담)을 쌓고 총구멍을 냈다.
축대 위에 세운 누정은 정면 3칸(7.5m), 측면 2칸(5.3m)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상부구조는 5량가 형식이다. 비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높이 1m 정도의 4각 돌기둥 위에 흘림기둥을 세우고 2익공 공포를 얹었다. 기둥 위 화반은
귀면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했다. 내부 천장은 통천장이다. 세련된 부재의 장식과 누정에 입힌 화려한 모로단청이 잘 어울리는 건물이다.
을밀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는 평양팔경의 하나인 ‘을밀상춘(
乙密賞春:을밀대에서 바라보는 봄 경치)‘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을밀대는 ‘을밀선인‘이 자주 하늘에서 내려온 장소 또는 ‘을밀장군(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이 싸워서 지켰던 곳이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칠성문루와 규모는 비슷하지만 그 의장의 격식이 한층 높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