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축하방
“봄은 왔지만 나에게는 봄이 오지 않았다”(임진강)
Summary
#1.과거)
어느 덧 내 나이 60살. 예전에 꽃다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멀어져 버린 눈과, 제대로 걷지 못한 절름발이의 다리만 남아있을 뿐이다. 서럽고도, 서러운 내 한평생의 일생을 병원에서만 보낸 듯 하다.
한적한 여인숙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신세를 하소연 할 데가 없다. 1984년 여수의 한 여인숙에는 아이의 울음 소리와 한 여인의 신음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온다.
혼자서 아이를 낳고, 소독된 가위로 태를 자르고, 피가 흥건한 이불에서 그저 난 막 태어난 핏덩어리 아기와 함께 처량한 울음만 흘렀을 뿐이다. 내겐 남편도 그리고 형제도 부모도 곁에 있지 않았다. 처음 남편과 결혼을 할 때,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혼사를 치루었다. 마음에 내키지도 않았고,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자신을 싫어했던 앙갚음을 폭력으로 휘둘리기 시작했다. 그는 형제도 없었고, 부모도 없는 천아의 고아였다. 자신을 무시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무작정 이유없이 짓밟고 때렸다.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저 맞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남편의 직장으로 인하여, 우리는 여수에서 부산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극장에 가게 된 그곳에서 잠깐 다녀오겠다는 남편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몇일동안 여수에서 일을 보러 다닌다고 한 동안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던 것이였다. 쓸쓸한 극장에서 난 홀로 영화를 보았고, 뒤에서 추근거리는 남자의 호흡 소리만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남편을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던 나는 첫째 재경을 낳고, 그만 살기를 결심하고, 다시 여수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남편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나에게 확신을 했고, 나또한 그를 한번 믿어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3일이 지나지 않아서, 다시 바람기로 이어졌고, 제대로 돈 한번 갖다주지 않은 관계로, 살림을 살 수 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쌈지돈을 모아가면서, 가정을 이루어 나갔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 후로도 내겐 3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을 얻었다. 하늘이 준 값준 보물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사랑과 애정어린 관심 뿐이었다. 남편이 돈을 주지도 않았고, 자식들을 나두고 일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하루하루가 눈물의 연속이였다. 그렇게 남편은 내게 모진 상처를 주면서, 도리어 나를 때리고, 1주에 2번 꼴로 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남편의 폭행이 너무나 심해져, 나의 머리를 끌은 채 마당까지 나와서, 분이 안 풀렸는지 삽을 가져다가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겠다 싶어 눈을 감고 죽은 척을 했지만, 남편의 모진 매질은 계속 되었다. 너무나 서글펐다. 한 번 뿐인 내 인생이 너무나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2.현재)
첫 그녀를 만난 곳은 병원이였다. 어머니께서 다리수술을 하신 관계로 찾아간 그 곳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곱슬한 머리를 한 어르신, 침대 앞에 붙어있는 chart상의 그녀의 이름은 62세 드신 박정민 어르신이다. 처음 본 그녀의 인상은 웃음을 머금은 부처상이였다. 어디하나 아픈 구석도 없도, 어디 하나 서글픔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마음의 문을 열고, 말을 걸었을 때... 난 이루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당시 그녀가 겪었을 뼈 아픈 상처들이 가슴 깊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게 ‘임진강’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과 한 번씩 모임을 갖노라면, 즐겨 부른다는 그 노래
임진강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물새들[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물새들[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3.현재)
한 많은 자신의 인생을 강의 물 처럼 이리저리 흘러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애절한 멜로디와
슬픈 곡조 속에서 남편의 폭행으로 실명이 되어 버린 눈에서 슬픈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눈물이 손까지 떨구어져 내렸다.
‘새롭게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내뱉은 그녀의 입에서 한숨어린 슬픔이 베어져 나왔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봄은 왔는데... 내겐 언제쯤 봄이 올까?” 봄이와도, 볼 수가 없고, 여름이 와도 볼 수 없는 내 한 많은 인생을 어떻게 보상이 되겠냐고.... 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해 줄 수 없었고, 병원문을 닫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내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져 나왔다.
P.S 볼 수도 없는 그녀에게 ' 임진강' 그 노래를 선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