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조업 도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어부들을 '납북귀환어부'라고 부르는데요.
남한으로 돌아온 이후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북한과 인접한 강원지역 뿐만 아니라
어민이 많았던 전남지역에서도
억울함을 풀지 못한 납북 어부들이 있습니다.
한 납북귀환어부를 강서영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VCR▶
[INTRO]
1971년 5월 19일.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진 83살 신평옥씨가
납북되던 50년 전 그 날의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여수선적 동림호의 선장이었던 신씨는
선원들과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유독 조기가 많이 잡히던 그날,
북한 경비정이 동림호에 접근했고,
신씨와 선원들은 그대로 북한에 끌려갔습니다.
◀INT▶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그 연평도 안개란 게 무섭습니다. 옆에 사람 지나
가도 몰라요. 그런게 그 배(북한 경비정)가 어디서
왔는지도 몰라 배 대서 보니까 빨간 모자(쓰고..)//
우리가 잡혀가고 있는데 (북한 군인들에게)뭐라고
할 겁니까.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
신씨와 선원들은 1년여 후 남한으로 귀환했지만
곧바로 어디론가 끌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신씨는 당시의 고통스런 기억을 조심스레 털어놨습니다.
◀INT▶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북한에서) 지령 뭐 받았냐 그거예요. 그런데 이제
저 같은 경우는 아무것도 없어요.//
잠을 못 자게 만들어요. 여기(다리)요 여기다가요.
막대기도 해 놓고요. 우겨서 눌러.. 어깨 누르고
이거 발로 올라타 보시오. "
신씨의 고향인 여수 적금리에 딸린 작은 섬 '소당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신씨가
소당도에서 북한과 접선하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니,
그제서야 고문이 멈췄다고 말합니다.
◀INT▶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그러고 나니까 이제 안 때려요. '진작 네가
그런 말 했으면 네가 안 맞을거 아니냐' 그거
예요. 근데 거짓말이지."
조사 끝에 재판에 넘겨진 신씨는
1973년,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와 월북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억울했지만 당시엔 달리 손 쓸 도리가 없었다는 신씨.
츨소 이후에도 신씨와 가족들은 주변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오해와 차별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INT▶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고기를 삶고 있는데 (정보경찰이 찾아와서)
왜 전향하라는데 안하냐 이거예요. 나는 대한
민국의 국민이오..."
현재는 폐허가 돼버렸지만,
당시 신씨가 지목했던 소당도 인근에는
방위군이 보초를 서는 초소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INT▶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지령을 받아왔다고 해서 (초소가) 생긴거죠.
나 그렇게 생각해요. 나 때문에."
차별과 편견 속에 지난 50년을 숨죽여 살았지만,
이젠 진실을 말하고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다는 신평옥씨.
신씨는 1심 선고를 내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
조만간 재심을 청구할 예정입니다.
MBC뉴스 강서영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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