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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증인.. 인간 허석의 '여순 10.19'

조희원 기자 입력 2020-10-20 07:40:18 수정 2020-10-20 07:40:18 조회수 0

◀ANC▶
이번 주 특별기획 '증인'은 여순10.19 당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많은 전남동부지역민들에게 여순10.19는, 인생을 뒤바꾼 큰 '계기'로 작용한 사건이었습니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을 넘어, 후손들도 마찬가지이고, 대상자들도 특정 계층만이 아닌 지역민 대부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오늘의 증인은 여순 당시 목숨을 잃은 큰아버지의 영향으로 인생의 진로가 바뀐, 모두가 알만한 사람인데요.

바로 허석 순천시장입니다. 조희원 기자입니다.
◀VCR▶
◀INT▶
"제가 기억할 수 없는 많은 친구들, 선배들, 이웃들의, 다시 그 이웃들의 가족이 여순에 관련된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순 때 동부지역에 살던 모든 사람은 피해자고, 희생자고. 그 누구도 가해자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1940년대에 교편을 잡았던
허 석 시장의 큰아버지 허양구 씨.

교직으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지만
여순사건이 발발하기 직전
경찰로 직업을 바꿨고,
고흥경찰서의 주임직으로 근무하다
순천 진압작전에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고향의 이웃들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허 씨는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인민군과 진압대 사이에서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허 씨는
다른 경찰들과 함께 인민군에게 붙잡혔고,
25살 젊은 나이에 유품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INT▶
"(붙잡힌 사람들을) 살짝살짝 빼줬나 봐요. (그러다) 붙잡힌 거죠. 그중에 한 분이 이 사람은 사실 우리를 도와준 분이라고 하고 있는데 대대적 진압군이 왔는데 그러니까 이제 (인민군이) 도망을 가야 하는 상황이죠. 그 와중에 휩쓸려서 전체를 즉결처분하고 갔나 봐요."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한과 울분을
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허 씨의 할머니는
큰아버지의 비극을 되뇌며
손주들에게 입버릇처럼 당부하곤 했습니다.

절대 '나서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INT▶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본 게 그때부터 곰방대를 물고... 평생을 곰방대를 물고 계셨어요. (그리고)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 어린아이에게."

하지만 할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들었던
여순에 대한 이야기는
동심 한켠에 강렬하게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년의 기억은 역사적 문제의식의 씨앗이 됐고
결국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으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INT▶
"여순의 그런 것이 인지화가 되어서 저에게 물려졌다고 생각을 해요. 동부지역에서 살아온 제 입장에서는."

평생 시민운동을 해 온 허 씨는 1980년대 후반,
전남동부지역사회 연구소와 함께
여순사건 유족 채록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유족 열 명 중 아홉 명은 입을 열지 않던 시절.

진상규명에 대한 절박함과 좌절감을
함께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INT▶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에게 '여순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해도 아무도 말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막걸리를 사들고 가서 일제강점기 때부터 살짝살짝 유도를 하는 거죠. 여수순천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 되어 있는 거고, 가슴 속에 어떤 응어리로 남아 있는 거예요."

여순사건이 70주기를 맞았던 지난 2018년,
비로소 공직의 길로 들어선 허 시장.

시장이기 이전에 유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여순의 역사적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INT▶
"저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시장이라서가 아니고, 누구든 여수순천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노래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그런 시대가, 시절이 되기를 (바라고) 생각합니다."

◀SYN▶
"여순 특별법 제정은 시대의 사명이다"

MBC NEWS 조희원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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