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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증인.. 12살 고아로 내몰았던 '여순'

조희원 기자 입력 2020-10-09 07:40:05 수정 2020-10-09 07:40:05 조회수 0

◀ANC▶
여순사건 당시, 누구보다 기구한 피해자는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로 남게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순천 낙안 신전마을에 살던 강득남 씨도 그 중 한명 이었습니다. 무차별 살상으로 온 가족을 잃어버리고 홀로 세상에 남겨졌는데요, 그때나이 불과 12살 이었습니다.

여수MBC 특별기획 증인 오늘은 강득남 할머니의 사연을 들어봅니다. 조희원 기자입니다.
◀VCR▶
◀INT▶
"누가 누군지를 몰라. 싹 타서 사람이. 휘발유를 뿌려서 다 타버려서 찾지도 못해, 송장을. 그서 우리 어머니는 구리 가락지를 껴서 그걸로 찾, 우리 아버지는 어디인지 발목인가가 안 타져서 찾고..."

1949년 당시 12살 소녀였던 강득남 씨.

인민군 연락병 소년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 22명이 처형되던 그 날,
강 씨는 온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됐습니다.

◀INT▶
"우리 언니는 따라갔는데 나는 어떻게 안 따라가고 신작로에 앉아 있다가. 우리 어머니 조사받고 나올 줄 알고, 우리 아버지랑. 조사받고 나올지 알았지 누가 들어가서 다 죽여 버릴지 알았어."

집도 불타 없어지고,
혈혈단신으로 남겨졌던 강 씨는 다행히
옆 마을에 살던 작은아버지 댁으로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보릿고개였던 시절.

이미 다섯이나 되는
사촌들을 키우기도 벅찼던
친척 집에서 먹는 밥은
늘 눈칫밥이었습니다.

◀INT▶
"삼동 되면 무밥을 해서 무만 훑어주고 주걱에 붙은 밥만 이렇게 긁어주면 밥풀만 긁어먹고. 내가 순전히 먹고산 것보다 굶고 산 것이 더 많았어요. 굶은 것이 더 많아."

매일 뼈에 사무치도록 외로웠지만,
동무들과 함께 학교에 가는 건
언감생심이었습니다.

◀INT▶
"(학교를) 그 해만 채우고 안 보내버려. 안 보내버리고 말아버려. 매일 일했지. 나락 훑고 품앗이해서 일하고... 세상에 언니나 하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동무 하나가 있을까 나 혼자."

강 씨는 18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건
시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을 낳아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보람이 있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강 씨는 여든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상처뿐이었던 지난 삶을 곱씹을 때면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 모질었는지,
아직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INT▶
"내가 산 것이 산 것이 아니야. 내가. 못 죽어서 살았지. 원망스럽지, 원망스럽고. 서럽고 분하고 나 산 세상을 누구한테 다 말할 수가 없고."

강 씨의 남은 소원은
꿈에서나마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는 것.

◀INT▶
"통 꿈에도 안 나타나요. 우리 부모님은 죽어버린 뒤에. 꿈에 한 번도 안 보여요."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가족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도록,
국가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뿐입니다.

MBC NEWS 조희원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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