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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리포트] 문화재 수난..일제의 흔적은?

문형철 기자 입력 2019-03-01 07:30:00 수정 2019-03-01 07:30:00 조회수 0

◀ANC▶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해드리고 있는
기획보도 시간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수난을 겪은 문화재나
일본의 야욕을 보여주는 현장이
지역에도 적지 않은데요.

역사적, 교육적 가치가 높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방치돼 있습니다.

보도에 문형철 기자입니다.

◀VCR▶

높이 3m, 너비 1.2m의 거대한 비석.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약 4백 년 전 건립된 대첩비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당시 여수경찰서장이었던 일본인 마쓰키는
이 대첩비를 철거한 뒤 서울로 빼돌립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없애기 위한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경복궁 앞뜰에서 발견된
대첩비는 시민들의 갖은 노력 끝에
다시 여수로 옮겨져 새롭게 새워졌습니다.

◀INT▶
"일제가 봤을 때는 정말 치욕스러운 그러한
역사죠. 그래서 여수의 충무공 대첩비,
마찬가지로 우수영에 있는 명량대첩비,
이런 것을 전부 다 같이 한꺼번에 서울로
반출시켰죠."

태평양 전쟁 당시, 여수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임시 사령부로 사용한 지하벙커.

100m 길이의 내부에서는 당시 사용하던
물탱크와 환기 시설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있는 일제 군사시설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으로 손꼽히지만,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바닥이 들뜨고 갈라지는 등
곳곳에 파손이 진행 중입니다.

--- Wiper ---

지하 벙커에서 8km 정도 떨어진 해안가.

일본이 건립한 해상 활주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일대에 해군 항공기지를 짓기 위해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야 했고,
어린 학생들까지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일제의 침략 전쟁과 야욕, 지역에 대한 수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지만, 이곳 역시
간단한 안내판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INT▶
"일제 강점기 군사 시설들이 목포나 부산이나
진해에 가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서
보존·관리하고 있고, 시민들이 그것이 어떤
시설인가를 알 수 있게 안내판이 세워져 있죠.
그런데 우리는 전혀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죠."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을
체계적으로 발굴·보존하고 활용하는 작업이
그 어느때 보다 절실합니다.

MBC NEWS 문형철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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