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여순 78주기 기획보도 이어갑니다.
여순사건 당시 국가폭력의 비극은
전남 동부권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당시 광주의 한 마을에서도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무려 78년 동안 통한의 세월을
가슴에 묻어왔는데요.
전라남도가 찾아낸 미신고 희생자인
96세 김해룡 어르신의 사연을
김하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1948년 광산군 송정읍에 살았던 김해룡 씨.
김 씨는 78년 전 그날 새벽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12월의 어느 날
우익 청년 단체인 대한청년단이
마을을 포위하더니
젊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갔습니다.
김 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 INT ▶ 김해룡 / 여순사건 생존자
"포위를 해서 무작정 젊은 사람들은 다 잡아갔어. 마을 앞에다 무릎 꿇려놓고 때린 사람도 있고 맞는 사람도 있고…."
평양에 다녀온 적 있는 지인이
김 씨의 집을 드나들며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 하나로 '연루자'가 됐습니다.
끌려간 뒤 고작 하루 만에 열린 군사재판에선
항변 한마디 할 수 없었습니다.
죄명도, 형량도 듣지 못한 채
전주형무소로 향했고,
그렇게 1년을 복역했습니다.
◀ INT ▶ 김해룡 / 여순사건 생존자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앞에서 뭐라고 하는데… 그리고 딱 끝난 거야. 빨리 끝났지. 말 몇 마디하고 끝났어."
시대 분위기 속에서 체념한 채
78년 동안 가족들에게마저
침묵을 지켜온 김 씨.
당시 10대 청년이었던 김 씨는
아흔이 넘은 노인이 돼서야
그날의 기억을 담담하게 꺼냈습니다.
◀ INT ▶ 김해룡 / 여순사건 생존자
"그때 시대가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지. 그때 일을 요새 사람들은 안 봐서 모르지만 그때는 무서운 세상이었지."
그러던 중
전라남도가 고등군법회의 명령 기록을 토대로
호적을 일일이 대조한 끝에
김해룡 씨를 찾아낸 겁니다.
◀ INT ▶ 조장군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순사건지원단 조사팀장
"광주, 전남, 경남, 전북까지 이르러 크게 관련이 없어도 이런 분들을 잡아들인 거예요.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이고."
아버지의 아픔을 이제야 알게 된 아들은
명예 회복만을 바랄 뿐입니다.
◀ INT ▶ 김철문 / 김해룡 씨 아들
"바라는 것은 따로 있겠어요. 명예 회복이 우선이고 피해자 가족뿐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변에 알려졌으면 좋겠고…."
김 씨처럼 지자체의 직접 조사로
발굴된 미신고 희생자는 790명.
전라남도는 연말까지 모두 1천 500명의
희생자 발굴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하은입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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