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처음 발굴된 지 28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DNA로 신원이 확인된 건
단 2구뿐인데요.
유해 발굴도, DNA 채혈도 더딘 사이
유족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박현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END ▶
◀ 리포트 ▶
반세기 만에 땅 위로 드러난
5구의 유해.
총탄이 관통한 듯 구멍이 뚫린 두개골부터
뒤엉킨 채 발견된 뼛조각들까지
빨갱이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입 밖에 내지 못했던 학살의 진상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 INT ▶ 박종길 / 여순10·19사건위원회 위원(당시 발굴단장)
"암매장 같은 것은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이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드러난 게 두개골이었어요. 두개골에서 더군다나 선명한 총탄 자국까지 드러나면서…"
하지만 2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유해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 st-up ▶
"여수 봉계동과 호명동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이곳 시립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 판CG ]광양 매티재 등 집단 암매장 추정지는 130곳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발굴이 이뤄진 곳은
10곳도 채 되지 않습니다.//
사유지인 경우 소유주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오랜 세월 지형마저 바뀌면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군인들에게 끌려간 아버지를 기다리다
학교 갈 나이가 돼서야
큰아버지의 호적에 오른 딸.
딸의 평생 소원은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아 제대로 모시는 겁니다.
◀ INT ▶ 강순애 / 여순10·19사건 유족
"많이 울었어요. 지금이니까 이렇게 안 울지, 그때는 항시 아버지 엄마 말만 하면… 그 동안에 소원이라도 풀어주려면 부모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유해를 찾는다 해도
가족을 찾기는 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유해 약 60구 가운데
DNA 검사로 가족을 찾은 건
담양에서 발굴된 2구뿐.
2년 전 유족 94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채혈 이후
추가 채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도내 병원 두 곳에서 언제든
방계 8촌까지 채혈할 수 있는
제주 4·3사건과 대조적입니다.
◀ INT ▶ 장은영 / 여순10·19사건 지원단장
"매년 새로 예산을 따고 용역을 통해서 (업무가) 단편적으로 이뤄지다 보니까 분절적으로 업무가 가서… 이렇게 건건이 하기보다는 사실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계속 새로 유해 발굴될 때마다 또 매칭하고 이런 게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위원회는 올해 말 유족 120명을 대상으로
2차 채혈을 재개할 계획이지만
DNA를 대조할 유해 유전자 데이터는
40구가 전부 입니다.
78년 전 차가운 땅에 묻힌 희생자들은
오늘도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MBC 뉴스 박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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