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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을 주는 신호들 등록일 : 2011-07-14 13:52

존재감을 주는 신호들/겸향 이병한

1. 여자 보다는 엄마가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혼의 여성은 젊고 건강하니까 더 강할 것 같은데

결혼하여 아기를 낳은 엄마가 더 강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엄마에게 주는 존재 신호 때문입니다.

물론 아기를 낳을 때 산고의 고통이 있었기에

아기에 대한 강한 보호본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엄마가 된 이후에 경험 하게 되는 것은

아기로부터 오는 존재감의 신호 때문입니다.

2. 아기는 온 몸으로 엄마가 필요 하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먹을 것이 해결 되고 기적이도 갈아 주었는데도

엄마가 옆에 있어야만 울음을 그칩니다.

엄마는 한 번도 자신에게 이토록 강한

존재감의 신호를 준 이가 없었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하고 당신만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아기는 온 몸으로 울어대면서 엄마의 품안에서만

울음을 그치며 곤한 잠을 잡니다.

자다가도 엄마가 없으면 기절 할 것처럼 웁니다.

3. 아기가 서서히 자라면서 엄마의 품을 떠나게 되는 때도

엄마는 자신에게 온 몸으로 존재감을 부어주었던

아기의 존재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 처녀 때는 감히

상상 할 수 없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어려운 일도 척척 감당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감을 주고

또 존재감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존재감을 충만하게 느끼게 되고

사랑 받지 못할 때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감은 나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상대의 존재가 있을 때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내가 그에게 존재감을 줄 수 있기도 하고

그로부터 존재감을 받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우리 사회에서 쏟아내고 있는 수많은 갈등들을 보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행위들

아니면 존재감을 상실한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진풍경들

심지어 총기 난사에 이르기 까지 먹고 사는 문제이기 보다는

존재적인 갈등들이 표출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6. 우리의 입에서 나가는 언어는

상대에게 존재감을 줄 수도 있지만

존재감을 상실케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경우는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당하는 당사자는 존재감의 상실

즉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7. 아름다운 사회란 건축이나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서로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감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존재감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기가 엄마에게 옹알이 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8. “난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존재감으로 충만해 집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 한다면

그 행복의 기대에 부응하려

더 착한 마음으로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동기를 줄 수도

나쁜 동기도 부여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9.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존재감의 표현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던진 언어는 마치 밭에 뿌린 씨앗과 같아서

뿌린 대로 가두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언어를 뿌린 자는 아름다움을

사랑스런 언어를 뿌린 자는 사랑을

덕이 되는 언어를 뿌린 자는 존경심을 거두게 됩니다.

.

10. 그러나 서로의 관계에서 오는 존재감은

이별이나 사별이라는 한계에서 망연자실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시간 속에서 오는 존재감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위로부터 오는 은혜의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11. 은혜를 체험하면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 은혜가 나를 영원한 시간을 확신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심지어 성공한 그 때에도 이 성공이

얼마나 지속 할 수 있을까를 놓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12. 우리에겐 깨지지 않는 존재감을 바탕으로

참된 안식과 평안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것이 두려움의 극복인 것입니다.

사실 참된 존재감은 나를 설계하시고

지으신 창조주만이 줄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지음을 받았다 해도

존재감은 밖에서 안으로 다시 들어와야만 합니다.

사랑을 혼자 할 수 없는 것처럼

존재감도 그와 같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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