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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좋은생각

최고의 노후대책 등록일 : 2013-01-17 10:32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뉴스를 외면하고 산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다. 50대의 일원으로, 지난 대선 때 이런 선택에 내몰렸던 불안한 세대가 안쓰럽다. 춥고 우울하다.

 

  얼마 전 개설된 공동체의 논어집주(論語集注) 강독반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오래 전부터 한문의 문리를 트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던 터다. 처음부터 강독에 참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 10명이 채 못 되던 강독 참여 희망자는 30~40대가 주축에 50대가 둘.

그런데 강독이 시작되자 일단의 대학생들이 무리지어 왔다. 정확하게 서른 살이나 어린 친구들이었다.

나이와 직급의 위계가 엄격한 집단에서 잔뼈가 굵었음인가? 아들의 동갑내기와 클래스메이트가 된 것이 어색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강독을 그만둔 이유다.

 

  30~4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이들이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

이런 일은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에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일상적이다.

이를테면 재작년 여름 시작한 이래 1년 반이나 지속되고 있는 공동체의 고대 그리스 철학 읽기 모임을 보자.

이 모임 참가자의 연령대는 2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에 걸쳐있다.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대학 신입생에서 대학원 석사과정, 박사과정, 전업주부, TV방송 그래픽 디자이너, 회사원, 대학 강사, 회계사, 공무원, 피아니스트, 한의사, 신문사 논설위원, 입시학원 원장….

 

  이들이 모인 계기는 물론 공부다.

토론이 뜨거워지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중간에 씩씩거리며 나와 찬물을 들이키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이들이 공부하고 토론만 하는 건 아니다. 뒤풀이 또한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다.

첫 모임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뒤풀이를 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정도다. 어쩌다 세미나를 쉬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기네끼리 어울려 영화관에 가네, 공연장이며 전시회장에 가네 하며 더 바쁘다.

오죽하면 한 40대 참가자가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지 못한 지음(知音)을 만난 듯하다”고 고백했을까.

 

  흔히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외국어 공부는 나이 들면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체력도 저하되거니와 무엇보다 암기력이 부치는 탓이다.

그런데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보노라면 나이 듦이 공부에 더 유리한 것 같다. 암기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이해하고 종합하는 힘은 더 뛰어난 것이다.

여기에다 청년들이 잡념이 많고 엉덩이가 가벼운데 비해 이들은 집중력과 끈기까지 갖추었다. 실제로 1년여 전 시작한 일본어 신문읽기반의 경우 평균적으로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낫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생기고 이것이 내면화한 것이 오래된 일도 아니다.

근대 이후 학교 제도를 체계화하고 같은 나이에 같은 내용의 공부를 획일적으로 주입한 이후다.

같은 나이에 같은 내용을 가르쳐 같은 생각을 가진 국민을 길러내는 건 근대국가의 핵심 통치전략이다.

산업사회에 필요한 노동자와 군대의 양성에 획일적인 교육이 유리했던 탓이다.

 

  전 국민을 같은 틀에 집어넣고 붕어빵을 찍어내는 식의 교육이 빚은 부작용은 크다.

천차만별인 개성이 말살되고 획일적인 사고가 지배한 것부터가 그렇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으로, 학교를 마치면 공부 끝이라는 생각도 여기서 나왔다.

지식정보화 물결이 세상을 휩쓸면서 평생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학교 교육의 들러리일 뿐이다.

 

  이 땅에서 특히 심각한 학교 교육의 부작용이 하나 더 있다. 나이와 학번으로 선후배를 따지면서 세대를 구별하는 것이다.

이런 구별 의식은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조금만 나이 차가 나도 세대차 운운하며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 든 세대는 젊은 세대를 무시하고 젊은 세대는 나이 든 세대를 경멸한다.

동영상으로 유포되는 지하철 패륜남, 지하철 막말녀나 추태를 부리는 노인의 모습도 이와 거리가 멀지 않다. 나이 들면 신체나 두뇌 조건에 상관없이 뒷방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한 것도 그렇다.

지난 선거에서 보여준 50대들의 선택도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황은 머리 숙여 두 번 절합니다. 그대의 편지를 기다린 지 오래…. 이제 천리 먼 길에서 사람을 보내 제 글에 대한 가르침과 아울러 틀린 곳을 바로잡은 책 한 권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에 관한 논변이 넉넉하고 자세하여 길 잃은 이를 이끄는 그대의 염려가 남김없이 베풀어졌습니다.

 

  퇴계 이황이 고봉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알다시피 퇴계와 고봉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이어감으로써 이 땅의 논쟁사를 빛낸 학자다.

첫 편지를 나눌 당시 58세의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석학 퇴계는 이제 갓 과거에 급제한 32세의 새파란 청년 고봉에게 깍듯이 예의를 다한 편지를 보낸다. 퇴계가 고봉에게 첫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뒤 두 사람의 애정과 존경을 담은 편지 교환은 13년 뒤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공부, 즉 자기완성이라는 절절한 화두를 꿰뚫기 위해 나이와 세대, 직위와 경륜, 지역의 한계를 뛰어 넘어 두 영혼이 만난 것이다.

이런 만남을 통해 공부하고 우정을 나누는 게 조선조 선비에게만 가능할까?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건축 이전에 그 건축에 머무는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이 명문대에 진학해 삼성에 입사하는 꿈을 넘어선, 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꿈을 이야기하게 하기 위해”

엊그제 진행된 공동체의 대안 대학원 등록 예정자들과의 대화에서 지원자들이 밝힌 포부들이다.

이 중에는 안경알을 갈며 평생 공부를 이어간 스피노자처럼 컴퓨터를 고치며 평생 공부하고 싶다는 컴퓨터 수리업자도 있다. 강의와 연구에 쫓기느라 미루기만 했던 근원적인 질문을 좇으며 삶을 제대로 정리하고 싶다는 은퇴 물리학자도 있다.

 

  직업, 연령, 성별은 다르지만 이들의 꿈은 20대 청년 못지않게 젊고 싱싱하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 한 시대, 그럼에도 이들의 노후 대책은 재산 축적이 아니다. 공부다.

이렇게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도 잦아들 텐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할지...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의 [공부, 최고의 노후대책]을 옮김

댓글(1)
  • 2013-01-18 09:30

    공부~~
    저도 공부하고 있는데...힘드네요~~ 노후대책으로 공부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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