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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리포트) 광주와 백범 김구의 인연

◀ANC▶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대표적 인물인
백범김구 선생이
광주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 주년을 맞아
백범과 광주의 인연을 짚어봅니다.

김인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VCR▶

해방 직후, 전재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이었던 광주 '백화마을'.

지금은 빽빽히 들어선 아파트 속
'백화 아파트'라는 이름과,
아파트 옆에 자리잡은 역사공원에서만
어렴풋한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전쟁을 피해 고국으로 돌아와
집 없이 떠돌던 여섯살 어린 소년은,
이 백화마을에서야 제집을 갖게 됐고
부모님, 7 남매와 더불어 삶을 꾸렸습니다.

그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집터엔 이제
집을 지어준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INT▶
이명규/ 광주 백화마을 거주민
"김구 선생이 줬다는 걸 알고 진짜 나는 감격했어요. 감동이고, 여기 살았을 때는 그런 거 전혀 몰랐어."

해방 직후인 1946년,
광주를 방문한 김구 선생은
광주천변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전재민들을
도우라며 후원금을 냈습니다.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옹기종기 방 한칸짜리 작은 주택 100채를 짓고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아
백화마을이 생겨난 겁니다.

◀INT▶
장선미 기획실장/ 광주 백범기념관
"김구 선생님의 이러한 가난한 동포에 대한 사랑, 이런 부분은 광주가 처음이었어요. 그 이후 1948년에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김구 주택을 또 마련하시고.."

판자촌이 아파트 개발에 밀려 사라지자,
김구가 남긴 따뜻한 겨레사랑을 잊지 말자는
움직임이 모여 백화마을에는
전국 두번째 백범기념관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INT▶
정영재 광주평화재단 대표/
"기존 사셨던 분들이나 또 시민사회나 학계 많은 분들이 그 지역은 좀 보존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귀감이 되고, 백범 선생이 행하셨던 그런 길을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불환과이환불균.

나라를 책임진 사람과 가정의 가장은,
적게 가진 것보다 모두가 고르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는 김구의 정신은,

소외되고 곤궁했던 백화마을 전재민들에게
삶을 되찾게 한 나눔으로 남아있습니다.

MBC뉴스 김인정입니다.

◀END▶
김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