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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멜라콩 다리'를 건넌 적이 있나요?

◀ANC▶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역에는

숨은 그림 같은 표지석이 있습니다.



작은 돌에 새기지 못할

큰 사연이 담겨 있는데요.



단어로 풀어보는 챗MBC,

오늘은 목포 멜라콩 다리 이야기를

허연주 아나운서가 전해드립니다.



◀END▶

◀VCR▶



EFFECT



열차는 날마다 삶을 싣고 달렸습니다.



무거운 몸이 더 이상 갈 곳 없던 종착역.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역사(驛舍)를

지켰습니다.



승객들의 짐을 들어 옮겨주던 그는

이름 대신 사무라이 영화 속 극중 인물을 닮았대서

별명으로 통했습니다.



‘멜라콩’ 박길수 씨.



◀INT▶ 강성복 *동명동 주민*

“눈이 쏙 들어가서 무섭게 생겼어요.

회색, 그분(수화물 취급 인력)들이 입었던 정장은 모자를 항상 반듯이 쓰고..."



고향 장흥에서 12살에 목포로 나온

박길수 씨의 평생 다짐은 ‘1년 1선(1年 1善)'.



(s/u)1년에 하나라도 선한 일을 하겠다는

그가 목포역 앞에 다리를 놓은 건

지난 1964년 4월 20일입니다.



폭 5미터 가량의 ‘멜라콩 다리’



당시 하천을 건너 목포역을 오가던

승객들의 불편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까닭이었습니다.



◀INT▶ 강성복 *동명동 주민*

“(하천 때문에) 10여분 돌아서 가니까 굉장히 먼

거리예요. 그 짐을 싣고 돌아서 10분 20분 가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지. 그걸 지름길을 만들어준

거예요.."



멜라콩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을 위해 1년 뒤(1965.3) 역 광장에

무료화물보관소를,



다시 다섯 해가 지날 무렵(1970.10)엔

섬 주민들을 위한 무료 숙박시설을 건립했습니다.



(돌출c/g) 영남 지역 등 전국의 중소도시까지 돌며

모금 운동을 벌여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INT▶ 최성환 교수 *목포대 사학과*

“ 당시 신문 기록에는 20평 남짓 규모로 만든다고

되어 있어요. 지금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괴짜는

괴짜인데 굉장히 시대를 앞서가는 도시재생,

사회복지 봉사활동의 선구자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목포역을 지킨 건 강산이 다섯 번

바뀔 시간인 48년.



(c/g)물처럼 세월이 흘러 다리가 놓였던 하천은

도로가 된지 오랩니다.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역 담장에 박힌 낡고

작은 비석 뿐.



◀INT▶ 정태관 대표*목포문화연대*

“..표지석이 남아있는게 천만다행이고,

현재 저게 사람 눈에 전혀 띄지 않지 않습니까

지역 차원에서보면 표지석을 올려서 키워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평생을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정성을 쏟았던

멜라콩 박길수 씨.



가로 25cm, 세로 45cm의

보잘 것 없는 표지석에 담기엔 그의 선한 사연은

너무나도 차고 넘칩니다.



MBC뉴스 허연주입니다.

허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