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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폭행과 고문의 연속"...피해 증언 나선 전남 납북어부들 (R)

◀ANC▶

반세기 동안 숨죽여온 전남지역 납북어부들이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여수지역에서만 22명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는데,



전남지역에선 공식적으로 법원에

재심을 신청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강서영 기자입니다.



◀VCR▶

[INTRO]



실수로, 혹은 강제로 북한에 끌려갔다 귀환했지만,

오히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어부'들.



1971년 북한으로 납치된 동림호의 선원 신명국씨도 납북어부였습니다.



신씨는 남한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찰 등지에서 조사를 받았고,

그 곳에선 추궁과 모진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앳된 23살 청년이었던 신씨는 어느덧 일흔 줄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INT▶

*신명구 / 납북귀환어부*

"차라리 (간첩 지령) 받은 거 있으면 그대로 내면

뺨 하나도 안 맞지. 우리가 뭐가 뭔지도 모르잖아

요. 배만 탄 사람들인데.//

말하자면 '어디 가면 담뱃불 두 번 반짝반짝하고'

자기네(조사관)들이 다 들먹여. 그러면 '예 맞습

니다' 그래서 서류가 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죠.



결국 신씨도 재판에 넘겨져 1973년 월북과

간첩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풀려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번엔 북한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고,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이어지는 경찰의 구타에

당시엔 손 쓸 도리가 없었다며 신씨는 억울함을 토해냈습니다.



◀INT▶*신명구 / 납북귀환어부*

"000에게 뭐 이북 좋다고 이야기한 적 없냐 그래.

000과 같은 자리에 있었던 적도 없고 그런 이야기

한 적도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이제 뭐 구타가 들어

온 거야."



법률지식에 어두운 어부들이 피해자였던 만큼,

국가폭력 사건 중에서도

비교적 늦게 주목받기 시작한 납북어부 사건.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신명구씨와 같은 서해안 납북어부 피해자가

최소 2100여 명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INT▶*변상철 / 민변 납북어부TF팀 연구원*

"(당시 납북어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사회 안전망 밖에 있었던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피해사실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고.."



또, 동림호 외에도 여수 탁성호와 목포 영조호 등

전남지역 어부들의 피해도 점차 드러나고 있지만,



재심 청구가 활발한 강원지역과 달리

지금까지 전남지역 납북어부가 공식적으로

재심을 신청한 사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INT▶ *주종섭 / 전남도의원*

"전라남도에서 먼저 (납북어부) 실태 파악을

정확히 해야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조례 제정 그리고 지원 정책을 제도적으로.. "



반 세기가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피해를 증언하기 시작한 전남지역 납북어부들,



지금에서라도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강서영입니다. ◀END▶

강서영